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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2-04 18:01
인상파 아틀리에 - 에두아르 마네, [에밀졸라의 초상]
 글쓴이 : 재원아트
조회 : 15,475   추천 : 0  

인상파가 일본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상식이다. 아예 파리나 런던 미술관에 가면 인상파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혀 놓았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당시 일본 그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이국적 풍물에 대한 호기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리지앵들은 중국 그림과 일본 그림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모네 조차 자신의 초기 작품들을 ‘중국풍 그림’이라고 부를 지경이었다.


이처럼 일본 그림에 대한 인상파의 찬사는 일본이라는 나라나 동양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무지에서 나왔다고 봐야할 것이다. 모네는 일본 그림에서 전통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혁신적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을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모네의 발언에서 우리는 일본이나 동양의 미술에 대해 인상파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인상파에게 일본이나 동양의 이미지는 자신들의 미학을 정당화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예술을 옹호해준 에밀 졸라를 위해 그린 그림


1868년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는 보들레르 못지않게 인상파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이다. 세잔느와 친했던 졸라는 틈만 나면 함께 기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서 근교의 풍광을 즐기곤 했다. 근대화가 가져다 준 쾌락을 마음껏 즐기는 무리에 졸라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졸라와 초기 인상파는 파리코뮌 이전에 낙관주의에 넘쳐나던 파리의 카페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주는 그림이 바로 [에밀 졸라의 초상]이다. 이 그림은 초상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에밀 졸라라는 한 사람의 작가를 위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초상화라면 그 화제의 인물이 소유한 것들을 나열하거나, 그럴듯한 풍경을 배경으로 인물을 그려 넣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게 초상화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그림은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하다.

 

 

 

배경에 각기 다른 문물과 사물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에밀 졸라의 초상]은 사물 하나하나에 신화적,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도상학적 상징성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 그점에서 역시나 마네 특유의 반전통성을 드러낸다. 반전통성은 모더니즘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마네를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로부터 내려온 그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서구의 미술전통을 거부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왜 그런 걸까? 얼핏 생각하면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리얼리즘이 굳이 전통을 거부할 필요가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린다’는 미술사적 혁신

여기에서 쿠르베 이전까지 서양미술사를 관통했던 미술의 이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 쿠르베가 “천사를 보여주면 그려주겠소”라고 말했던 까닭은 이전까지의 화가들은 서양미술의 전통 선상에서 ‘보이지도 않는 천사’를 그려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대상을 그리는 걸 서양미술은 고상한 예술이라 봤고 전통이라고 권장했던 것이다.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공허한 종교의 이념이나 신화의 내용을 그리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아카데미의 전통’에 쿠르베를 비롯한 새로운 예술가들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눈이라는 생물학적 신체기관이었다. 이 눈의 망막에 비치는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쿠르베와 인상파의 지향점이었다.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주관을 배제하고 카메라 렌즈에 비치는 이미지만을 화폭에 옮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점묘파와 같은 극단적인 화파들이 나온 셈이다. 여하튼 현실 속의 장면을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미술사적 혁신’을 씨앗처럼 간직한 그림이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 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각 사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림 속의 일본 이미지와 인상파 미학은 무슨 관계?


그림을 들여다보면, 왼쪽에 병풍이 세워져 있고, 오른쪽 벽에 그림들이 걸려 있다. 세 점의 그림에서 왼쪽에 있는 것은 스모 선수이고,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은 마네 자신의 [올랭피아]이다. [올랭피아] 위에 있는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원본을 모사한 [작은 기사들]이다. 이 그림은 시인이자 미술 비평가였던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예술 정신을 옹호해준 졸라에게 보답으로 마네가 그려준 초상화였다. 그러나 마네는 단순하게 졸라에게 아부나 하려고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니었다.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화제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사한 [작은 기사들]과 자신의 [올랭피아]를 같이 배치함으로써 마네는 자신에게 쏟아진 ‘스페인 기법’을 베끼는 실력없는 화가라는 비평가들의 비판을 암시하고 있다. 스모 선수를 그린 일본 그림이나 병풍은 ‘전통 없는 예술’이 가능하다는 실증이다. 게다가 졸라는 마네가 즐겨 보던 비평가 샤를 블랑의 [그림의 역사]라는 책을 펼쳐 들고 있다. 여기에서 졸라는 전통에 박식한 지식인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마네에 대한 졸라의 옹호가 전통에 대한 숙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마네의 그림은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에 마네는 자신의 예술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담아놨다고 할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베끼고, 일본 그림의 반전통성을 구현해서 [올랭피아]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의 진의를 알아본 졸라가 이 모든 사실을 증언하는 [그림의 역사]를 펼쳐놓고 앉아 있다. 이 영화 같은 장면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무엇일까? 화가는 이렇게 그림으로 비평가에게 조목조목 반론을 해놓았다. 마네가 얼마나 비평가들의 말에 민감했는지 짐작하고 남을 그림이라고 하겠다.

 

이택광 / 문화비평가,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
부산에서 자랐다.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화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대학교에서 철학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각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오늘의 미술' 코너, http://navercast.naver.com/art/impression/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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