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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2-17 14:52
인상파 아틀리에 - 카미유 피사로,『퐁투아즈의 외딴집』
 글쓴이 : 재원아트
조회 : 7,646   추천 : 0  
   http://navercast.naver.com/art/impression/2045 [662]

보불전쟁의 전란이 끝난 뒤에 피사로는 파리 북서쪽에 있는 퐁투아즈로 이사를 해야 했다. 루브시엔느에 있던 집이 프러시아 군인들 때문에 초토화되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리를 하자니 엄청난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퐁투아즈는 유황공장에 가까운 곳이었기에 주거지로 그렇게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이 고대 도시는 여전히 중세풍의 정원과 과수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리얼리즘’에 가장 충실했던 인상파 화가


피사로는 곧 이 마을에 정을 붙였다. 그는 퐁투아즈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는데, 정원과 과수원은 물론, 공장까지도 그렸다. 피사로를 위시한 인상파 화가들은 자신들의 기법을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의식에 가장 충실했던 화가가 바로 피사로일 것이다. 피사로는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퐁투아즈를 그렸다. 비슷한 형편에 아르장퇴유에 살면서 그 동네 풍경을 그렸던 모네와 다른 모습을 피사로는 보여줬다. 예를 들어서 모네는 공장이나 허름한 집 따위를 그리지 않았지만 피사로는 달랐다. [퐁투아즈의 외딴집]은 피사로의 리얼리즘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과 모네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모네가 도회풍이라는 걸 금방 알 수가 있다. 피사로의 그림은 주로 전원풍경이 담겨 있다. 단순하게 전원의 모습을 담아냈다기보다는 그곳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어떻게 생각하면 바르비종파의 느낌을 많이 풍기는 것 같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피사로의 그림에 등장하는 전원은 바르비종파의 그림처럼 ‘특정한’ 전원을 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공장을 그린 피사로의 그림은 이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아마 바르비종파라면 퐁투아즈의 실제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사로가 그린 [과수원]과 밀레의 [이삭줍기]를 비교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겠다.

 

 

 

 

삶이라는 건 오묘한 것이다. 전란의 피해로 인해 퐁투아즈로 이주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선택은 피사로에게 좋은 결과로 작용했다. 언덕들이 많은 퐁투아즈의 지형은 피사로에게 훌륭한 조망을 제공했다. 게다가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색채는 피사로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피사로 또한 그림을 그리는 목적으로, 그림으로 먹고 살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에 이미 공식적인 인상파 화가들의 딜러였던 뒤랑-루엘에게 그림을 선보이기 위해서 그는 파리에 있는 피갈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파리에서 그는 스튜디오에서 잤는데, 낮 동안은 주로 인상파 화가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게르부아 에서 시간을 보냈다. 카페 게르부아는 몽마르트 부근에 있는 카페였는데, 이곳에서 피사로는 조용히 마네나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의견을 가만히 듣곤 했다.

 

 

인상파의 태동지,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든 화가들

피사로는 말을 아끼는 성격이었는데, 카페 게르부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동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엉뚱하지만 신중한 견해를 보태곤 했는데, 주로 세잔이 그의 말상대였다. 세잔 역시 성격으로 치면 피사로 못지않게 독특했다. 그는 항상 지저분한 푸른 바지를 입고 돌아다녔는데, 카페에서 피사로를 발견하면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다. 당시 세잔은 오르탕스라는 여인을 만나서 폴이라는 아기를 낳은 상태였다. 1872년 1월에 태어난 아기는 돌도 되지 않았다. 세잔 역시 모네처럼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결혼 때문에 고초를 겪었는데, 흥미롭게도 피사로 역시 하녀와 결혼해서 당시로 본다면 파격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도 괴짜에 속하는 인물이 세잔이었다. 주변에 지적인 대화를 나눌 만한 친구가 없었던 그에게 피사로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대체로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유한 상류층 지인을 의미했다. 피사로는 이런 세잔에게 폴 가셰라는 의사를 소개해줬다. 가셰는 퐁투아즈 맞은 편 강 건너에 대저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가셰가 바로 반 고흐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 인물이다. 고흐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셰의 모습은 금발에 창백한 얼굴을 가졌다. 여하튼 가셰도 괴짜스러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곧잘 사람의 앞날을 예언한답시고 골상을 보고 건강상태를 진단해서 언제 사망할지를 말해주곤 했다. 아마도 가셰는 당시 유행했던 골상학을 무척 신봉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세잔의 강력한 조언자였던 피사로


피사로의 집은 언제나 화가들의 방문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뛰놀았고, 가셰와 세잔은 피사로의 아이들과 곧잘 놀아주었다. 피사로는 상당히 가정적인 남자였지만, 가정적이라는 것이 꼭 여성들에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아내 줄리는 병든 시어머니에게 매까지 맞아가며 수발을 들어야했고, 없는 살림에 찾아드는 손님들을 접대 해야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고생스럽게 느껴지는 이런 일들을 줄리는 피사로를 돕기 위해 군말 없이 수행했다. 심지어 피사로의 경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지역 그림 수집가들과 안면을 트고 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까지 했다. 정말 환상의 내조자였던 셈이다.

 

이런 피사로의 가정생활은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도 모네 정도나 비교 가능하다. 세잔의 경우도 아들을 낳기는 했지만 전혀 아내와 교감을 갖지 못했다. 언제나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벼룩에 물려서 온 몸을 긁어댔던 위인이 바로 세잔이었다. 세잔은 피사로의 집을 좋아해서 파리로 돌아갈 기차시간을 놓칠 정도였다. 아마도 줄리의 친절에 세잔은 감복했던 모양이다. 세잔은 피사로의 아이들도 좋아해서 함께 놀 때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세잔에게 피사로는 스승이자 동시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당시 피사로의 나이는 40세를 넘겼는데, 혼란스러운 내면을 갖고 있었던 세잔은 이런 피사로를 만나서 안정을 찾았다. 피사로는 세잔에게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쳤고, 엄밀한 관찰력에 기초해서 그림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퐁투아즈는 피사로뿐만 아니라 세잔에게도 귀중한 공간이었던 셈이다. 후일 동생 테오로부터 피사로의 그림을 소개 받은 반 고흐가 이곳을 찾아와서 가셰를 만나게 되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택광 / 문화비평가,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
부산에서 자랐다.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화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대학교에서 철학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각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오늘의 미술' 코너, http://navercast.naver.com/art/impression/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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